57년간 나무만 깎아온 '천하제일' 장인, 그가 마침내 공개한 '나무 속 비밀'의 정체

 15세의 소년이 처음 조각도를 잡았던 그 순간부터 무려 57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반세기가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오직 나무에 부처의 형상을 새기는 일에만 몰두해 온 장인이 있다. 마침내 "천하제일의 목조각장"이라는 영예로운 별칭을 얻은 국가무형문화재 허길량 장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의 혼과 땀이 응축된 네 번째 개인전이 오는 15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며, 평생을 바쳐 나무와 나눠온 깊은 교감의 결과물들을 대중 앞에 선보인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박달다듬이목과 소나무에서 깨어난 비천(飛天)’이다. 단단하기로 이름난 박달나무와 우리 민족의 정서를 품은 소나무, 그 오랜 세월의 결을 품은 나무에 장인의 손길이 닿아 비로소 생명을 얻은 천상의 존재, 비천상 20여 점이 전시의 중심을 이룬다. 마치 고대 사찰의 벽화 속에서 막 튀어나온 듯, 유려한 곡선과 생동감 넘치는 표정을 지닌 비천상들은 관람객을 단숨에 신화의 세계로 이끈다. 여기에 미륵반가사유상, 보살상, 삼신불 등 총 30여 점에 이르는 작품들은 그 자체로 장인의 57년 수행과도 같았던 작업 역사를 웅변한다.

 


허길량 장인의 작업은 단순한 공예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는 은사였던 서수연, 이인호 우일 스님의 가르침 아래, 나무를 깎는 기술 이전에 불교의 깊은 세계관을 먼저 체득했다. "불상은 단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부처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모든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오대산 중대보궁을 비롯해 전국 각지의 이름난 사찰에 그의 손에서 탄생한 불상들이 모셔져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조각칼 끝에서 나무는 더 이상 무생물이 아닌, 불성을 향한 염원과 깨달음의 메시지를 품은 살아있는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국내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기념비적인 작품이 최초로 공개되어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부처가 최초로 불상을 조성할 때 사용했다는 전설 속의 나무, '전단향목'으로 조각한 높이 60cm의 관음보살상과 지장보살상이 바로 그것이다. 은은한 향과 고귀한 결을 자랑하는 이 불상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전시 공간을 압도하는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또한 법신·보신·화신이라는 불교의 심오한 세계를 조형적으로 풀어낸 미륵반가사유상과 장엄한 보살상들은 장인이 평생에 걸쳐 추구해 온 조형미와 정신세계의 정수를 남김없이 보여준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허길량 장인이 일평생 쌓아온 부처님 조각의 기량이 집약된 전시"라며 "많은 이들에게 부처님의 마음을 함께 느끼고 나눌 귀한 인연이 될 것"이라고 축하의 말을 전했다. 장인 스스로도 "이번 전시가 관람객에게 불교미술의 참뜻을 나누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는 소박한 바람을 밝혔다. 이번 전시는 한 거장의 예술 세계를 감상하는 것을 넘어,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 속에서 묵묵히 전통을 지키고 미래를 성찰하게 하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