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한 점이 35억…‘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미술시장의 경고

 미술품 경매 시장에 겉보기엔 훈풍이 불고 있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KAAAI)가 발표한 2025년 3분기 미술시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주요 9개 경매사의 낙찰총액은 313억 5천만 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237억 5천만 원과 비교했을 때 무려 76억 원, 비율로는 31.99%나 증가한 수치다. 시장의 양대 산맥인 케이옥션과 서울옥션 역시 각각 59.5%, 23.7%의 낙찰총액 증가율을 보이며 외형적인 성장을 이끌었다. 이러한 수치만 놓고 보면 얼어붙었던 미술 시장이 마침내 긴 침체를 끝내고 활기를 되찾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적 성장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 놀랍게도 3분기 경매에 출품된 작품의 수는 총 4,599점으로, 전년 동기의 6,045점에서 23.9%나 감소했다. 시장에 나온 물건의 수는 크게 줄었는데, 전체 거래 금액은 오히려 늘어나는 기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경매 시장의 체질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지표다. 소수의 작품이 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동안, 대다수의 작품은 이전보다 더 주목받지 못하고 거래의 장에서 외면당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시장 전반에 온기가 퍼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지점만 뜨겁게 달아오르는 국소적인 과열 현상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출품작은 줄었는데 낙찰총액이 늘어난 기현상은 소수의 ‘대어’가 시장 전체를 견인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국민 화가 이중섭의 작품이 있었다. 지난달 케이옥션 경매에 나온 이중섭의 ‘소와 아동’은 무려 35억 2천만 원이라는 압도적인 금액에 낙찰되며 3분기 최고가를 기록했다. 그의 소 연작은 대부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어 경매 출품 자체가 극히 드물다는 희소성이 가격을 밀어 올렸다. 여기에 박수근의 1959년 작 ‘산’ 역시 12억 원에 팔리며 힘을 보탰다. 작년 한 해 동안 10억 원 이상에 낙찰된 작품이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29억 원) 단 한 점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올해 3분기에만 10억 원을 훌쩍 넘는 작품이 두 점이나 등장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시장의 전반적인 회복 신호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한다. 이는 미술 시장의 ‘양적 축소’와 ‘질적 성장’이 동시에 일어난 결과이며, 본질적으로는 시장의 ‘고가화’와 ‘양극화’가 더욱 심화하는 과정이라는 진단이다. 즉, 돈이 되는 소수의 인기 작가와 검증된 작품에만 자본이 집중되는 ‘쏠림 현상’이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쏠림은 단기적으로는 시장의 지표를 끌어올리는 긍정적 효과를 낳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의 허리를 약화시키고 다양성을 해쳐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지금의 시장은 건강한 회복세가 아닌, 소수 거장들의 작품에 기댄 불안한 성장일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